VIP손님 갑질에 눈물 다반사… 감정노동법이 지켜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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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스포트라이트-일상 속 갑질] <5> 기댈 곳 없는 유통업체 판매직원
참고 또 참았는데… 재벌 사모님 뺨치는 갑질에 면세점엔 중국인들도 욕설, 울면서 계산해주는 직원도
저도 보호되나요? 근로자 63% 감정손상 위험, 10월 법 개정 기대해보지만 협력업체 소속이라 적용 모호..상당수 보호 제외 상황 우려


"감정노동자를 위한 법, 정말 지켜질까요?"

서울 시내 면세점 화장품 브랜드에서 근무하는 A씨는 14년 경력의 베테랑이지만 몰려드는 중국인 보따리상 '다이궁'에게는 속수무책이다. 일부 다이궁은 물건 재고가 떨어지거나 결제가 늦어지면 "빨리 해달라"고 매장에서 소리를 지른다. 일부러 들으라는 듯 중국어로 욕하는 경우도 흔하다. 몇몇 한국인 고객은 환율에 따라 결제를 수십 차례 반복한다. A씨는 "10년 전 한국 VIP고객의 갑질에 시달렸다면 지금은 중국인 보따리상이 자리를 대신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A씨가 일하는 매장은 늘 일손이 부족하다. 회사는 인력을 충원해줄 생각이 없다. 이 때문에 오는 10월부터 시행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남의 일이다. 이 개정안은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가 골자다.

A씨는 "고객에게 욕설을 들을 경우 법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바쁜데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며 "속상한 일이 많아 울면서 계산하는 직원도 있다"고 토로했다.

7일 서울노동권익센터 '2015 유통산업감정노동연구'에 따르면 여성 백화점·면세점 근로자 63% 이상은 감정손상이 위험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물건 집어던져도 "죄송합니다"

백화점, 면세점 등 유통업체 판매직은 감정노동에 시달리지만 감정보호가 어렵다. 고용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은 주로 사람을 대하는 업무 중 자신이 실제 느끼는 감정과 다른 특정 감정을 업무상 요구하는 일을 일컫는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이정훈 감정보호팀장은 "백화점에서 일하는 직원은 백화점이 아닌 입점 브랜드 매장과 고용관계를 맺는다"며 "직원이 고객에게 감정노동을 강요당할 때 보호할 주체가 모호하다. 이른바 간접고용된 계약직은 보호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통산업감정노동연구에 따르면 대다수 유통업체 판매직은 간접고용이다. 백화점은 79.9%, 면세점은 62.1%가 협력업체 소속으로 근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업체 소속이란 근무지 사업주와 직접 고용계약을 하는 유형(직영)과 대비되는 형태로 브랜드업체나 판매업체 등과 고용계약을 하고 현 근무지에서 일하는 유형(협력)을 뜻한다.

문제는 10월 시행될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정규직 근로자에게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성종 감정노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서비스산업 내 원청기업이 하청기업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의무를 규정하지 않아 상당수 감정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할 상황이 우려된다"며 "백화점 판매직 등 서비스업은 용역, 하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가는 상황이다. 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노동자가 나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감정노동보호 예방 및 준비가 중요

노동계는 대형 유통업체가 입점 매장 근로자를 교육하고 관리·감독하는 만큼 감정노동 보호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통업계는 근로자 고용관계를 백화점이 아닌 매장이 맺은 만큼 세부적인 책임까지는 없다는 입장이다.

신세계백화점은 "고객 응대 문제 발생 시 백화점 자체 고객상담실에서 절차를 밟는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과 신라면세점은 "감정노동 자기보호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했다"고 전했다. 다만 대형 유통업체들은 공통적으로 "백화점 내 매장 직원은 입점 브랜드 소속"이라며 "고용관계를 백화점과 맺지 않아 감정노동 보호 범위를 어디까지 할지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노력이 고객서비스나 구입한 제품에 대한 정상적 이의 제기까지 막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형식상 계약조건보다 실체적 진실이 중요하다"며 "백화점에서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실제 관리하는 측면이 있다. 감정노동 보호에 주의를 기울일 책임이 있다"고 평했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준형 팀장 구자윤 김규태 이진혁 최용준 김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