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성폭력, 장애인 보호시설만 있고 자립시설은 없어

지령 5000호 이벤트

(5)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자립지원 시급
법정보호기간 2년 지나도 10년이상 시설에 머물기도
여가부 연내 1곳 만들 계획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인 부산 사랑의집을 운영하는 구양희 원장은 지난 2016년 12월께 4명의 피해자를 시설에서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15년 동안 시설에서 머물던 피해자들이었다. 시설에서 이뤄지는 치료, 상담보다 이들에게는 당장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자립 지원이 필요해 내린 결정이었다. 전국에 자립지원시설이 1군데도 없어 그동안 시설에 머물 수 밖에 없었고 긴급 보호가 필요한 신규 피해자들이 정원 초과로 입소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구 원장은 더 이상 정부 지원을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활동보조인을 구해 자립 지원을 돕고 있다.

구 원장은 16일 "여전히 시설에는 12년, 10년씩 머문 피해자가 많아 당장 자립 지원을 해야하는데 방법이 없다"며 "무턱대고 시설에서 내보냈다가 재차 피해를 당할 수 있어 자립 지원 시설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예산 부족으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장애인은 무조건 보호대상?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회로 돌아가는 통로가 막힌채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가해자가 친족이나 주변인인 경우가 많아 피해 반복 우려 때문에 시설 보호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정부가 '보호대상'으로만 여길 뿐 사회 복귀를 위한 '자립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시설의 법정 보호 기간 2년이 지나면 자립 지원이 이뤄져야 하지만 정부가 전문기관을 세우지 않아 입소자들은 10년 이상 보호시설에서 머물며 사회로 돌아갈 기회를 잃고 신규 피해자들은 시설의 정원 초과로 피해 구제를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만 전국에 8곳이 있고 입소 정원은 총 110명이다.

충북 청주의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모퉁잇돌'의 송은주 원장도 입소자 자립 문제를 놓고 고민이 많다. 송 원장은 "9년 넘은 입소자들이 있는데 과거 자립 지원을 위해 시설에서 내보냈다가 다시 성폭력을 당해 입소한 경험이 있었다"며 "법률적 지원, 치료, 상담을 하는 보호시설에서 자립 지원까지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이 시설을 나가지 않자 긴급 보호시설이 장기 시설처럼 변질됐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신규 피해자가 와도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송 원장은 전했다. 이 시설은 12명 정원이지만 피해자들이 퇴소하지 못해 현재 14명이 머물고 있다. 그는 "다른 장애인 피해 시설도 정원 초과 문제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 시설로 발길을 돌리지만 중증 장애인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입소 자체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룹홈 대안 목소리… 여성가족부 확충 노력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 사업 운영실적'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보호시설에 입소한 장애인 피해자는 180명이다. 장애인 보호시설 8곳의 정원이 110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70명은 비장애인 보호시설에 머무는 셈이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열림터'를 운영하는 송미헌 원장은 "중증 장애 피해자들은 비장애인 시설에서 돌보기가 어려워 입소를 거절할 때가 있다"며 "입소한 후라도 다른 입소자들과 마찰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립을 돕는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애인들이 안정적으로 피해치료를 받고 사회 복귀를 위해서는 보호시설과 자립시설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공동생활시설 2곳이 있지만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아니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안으로 장애인 공동생활시설 1곳을 세우고 내년에도 추가 설립방안을 검토중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예산 문제로 보호시설을 늘리는 데만 집중했으나 자립시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 올해 처음 1곳을 만들기로 결정했다"며 "현재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요조사중인데 결과를 토대로 내년에 1곳을 더 만드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전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최용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