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미국의 위험한 反이란 정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보좌관들은 이란이 중동 테러리즘의 진원지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장에 동참해왔다. 그러나 사우디 왕 살만이 말한 것처럼 이란을 글로벌 테러리즘의 '창끝'으로 묘사하는 것은 오도된 것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중동전쟁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극히 위험하다. 미국의 반이란 정서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에 그 뿌리가 있다. 미국 대중에게 444일 동안 미 대사관 직원들이 급진적인 이란 학생들에게 인질로 잡혀 시련을 겪은 것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 심리적 충격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 미국인들에게 인질위기-그리고 사실 이란혁명 그 자체-는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이란혁명이 미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정보부 MI6의 1953년 '음모 4반세기' 뒤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미국인들은 거의 없다. 미.영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 정부를 전복하고 샤가 통치하는 경찰국가를 세우려 획책했다. 국유화 위험에 노출된 이란 석유에 대한 기존의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 같은 음모를 꾸몄다. 또 대부분 미국인들은 인질위기가 샤를 치료 목적으로 미국에 받아들이기로 한 판단 착오성 결정으로 촉발됐다는 점 또한 모른다. 많은 이란인은 이를 혁명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국은 화학무기 사용을 포함해 이라크의 이란 침공전쟁을 지지했다. 1988년 마침내 전쟁이 끝났을 때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이란에 대한 금융.무역 제재를 가했다. 1953년 이후 미국은 이란의 자주적 통치와 경제개발에 반대했다. 비밀공작이 동원됐고, 1953~1979년에는 독재정권을 비호했으며, 이란의 적들에 대한 군사적 후원과 수십년에 걸친 제재가 그 수단으로 동원됐다.

미국인들의 반이란 정서의 또 다른 배경인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두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하마스에 대한 이란의 지원 역시 역사적 문맥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1982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는 무장세력을 궤멸시키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했다. 이스라엘 점령군을 등에 업은 무슬림 학살에 대항해 이란은 시아파가 이끄는 헤즈볼라 창설을 지원했다. 이란은 또 이스라엘의 존립권을 거부하는 수니파 강경파인 하마스도 지원하고 있다. 19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 수십년이 지나고, 평화협정이 교착된 가운데 하마스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파타(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정당인)에 승리했다. 하마스와 대화에 나서는 대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를 분쇄하기로 했고, 2014년 처참한 가자지구 전쟁을 일으켰다.

이스라엘은 또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생존위협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스라엘 강경파는 거듭해서 미국에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거나 최소한 이스라엘이 그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다. 다행히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거부했고, 그 대신 이란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간 협약을 이끌었다. 협정으로 10여년에 걸친 이란의 핵개발 여정이 봉쇄되고, 양측 간에 추가로 신뢰를 구축할 공간도 마련됐다. 그러나 트럼프와 사우디는 이 중요하고 희망찬 협약으로 만들어진 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파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외부세력들은 극단적으로 멍청해서 오직 양보만이 해결할 수 있는 쓰디쓴 국가적 또는 종파적 분쟁에서 스스로 일방의 편을 든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사우디와 이란 간 경쟁, 수니파와 시아파의 관계는 모두 상호 합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분쟁의 당사자들은 미국(또는 일부 다른 열강)을 전쟁에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만 한다면 양보 없이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머쥘 것이라는 비극적 환상을 품고 있다.
지난 세기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가 중동의 파워게임에서 실책을 저질렀다. 이들 모두는 생명, 돈을 낭비했고 위신을 구겼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모두를 너무도 쉽게 재앙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는 군비경쟁 2라운드보다 협상을 강조하는 외교의 시대를 필요로 한다.

제프리 삭스 美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 소장,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